예언이 난무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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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분 류 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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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이 난무하는 사회
 
1559년 7월 1일, 프랑스 왕실 내에서는 마상(馬上) 창시합이 한참 벌어지고 있었다. 앙리 2세와 가브리엘 백작간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이 싸움은 해가 지도록 결판이 나지 않아 무승부로 결정되었지만 앙리 2세의 고집으로 인해 결투가 연장되었고 결국 왕은 창에 눈이 찔려 그로부터 9일 후 죽고 말았다.

  사건은 심각했으나, 이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유명해지게 되었다. 바로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의사였다. 그는 일찍이 이 사건을 예언했고 그대로 적중시켰던 것이다. 왕이 죽고 나자 분노에 찬 파리 군중들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인형을 불태우면서 그를 화형에 처하라고 요구했고, 그는 한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다.

  사실 예언의 역사는 장구하다. 고대 문명권 사람들이 신전에서 신탁(神託)을 꿈꾸었던 것부터 집시족의 수정구슬을 거쳐 현대의 컴퓨터점에 이르기까지, 방법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 예언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예언을 적중시켜서 유명해진 사람도 많다. 13세기 유럽의 수도승 로저 베이컨은 “단 한 사람이 조종하는 배가 대양을 항해할 것”이라는 예언을 해서 후세 영국 점쟁이들을 놀라게 했으며, 1661년 조지 폭스는 4년 뒤 전염병이 런던을 휩쓸 것이라는 예언을 적중시켰다. 20세기 들어서는 미국의 진 딕슨 여사가 케네디 암살을 13년 전에 예언해서 화제를 낳았다. 그녀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얼마나 더 살 것인가”를 물어와 그의 죽음도 예언해 주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명 인물의 신변 변화나 역사적 사건을 예언하고 적중시킨 예언가는 큰돈을 벌고, 항시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서 △△무당이니 ▽▽도사니 하며 예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적지 아니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사건’을 점친 예언서마저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언은 믿음의 대상일까? 이에 대한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리기는 어렵다. 맞는 사례도 있지만 틀린 예언도 많기 때문이다. 유명한 진 딕슨 여사는 1966년 카스트로 쿠바수상이 죽을 것이라는 빗나간 예언을 했으며, 김일성 사망을 예언해 파장을 몰고온 심진송씨도 1997년초 김정일 망명이라는 틀린 예언을 한 바 있다.

  이런 저런 점을 감안할 때 필자는 예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진실 여부를 떠나, ‘예언’이 문제되는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선 떠오르는 것이 예언 남발이다. 유명 인물의 신상에 대한 예언을 하여 맞추면 유명해지고 맞추지 못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질 나쁜’ 예언가들이 예언을 남발하고, 대중들은 그러한 예언에 현혹되기 일쑤이다. 특히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정치가들이 유명 예언가를 ‘참모’ 삼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이런 행태는 대중들의 관심을 잘못된 방향으로 증폭시킨다.

  또 다른 문제점은 운명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기보다는 삶의 주체로서 자신감을 상실하고 우리 자신의 운명에 이끌려가는 잘못된 풍조를 낳는다는 것이다. 좋은 운세만을 믿고 자만하거나 나쁜 운세를 믿고 지레 의기소침하는 것도 예언의 부작용이다.

  더군다나 예언이 난무하는 사회는 가치관이 흔들리는 사회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한층 문제가 심각하다.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노력해서 무얼 하나”, “한탕 해서 펑펑 써보자” 따위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성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을 가만 두지 않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어느 제독은 전속 점쟁이들로부터 ‘성스러운 닭’이 모이를 안 먹는다는 보고를 받은 뒤, “그래? 그럼 물도 못 마시는지 시험해 보자고” 쏘아붙이듯이 말하면서 닭을 바다 속에 집어던지고 적과 교전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는 일화를 되새길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 하겠다.

  예언에 관해 냉소적이었던 로마 철학가 키케로는 점쟁이의 말은 믿을게 못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점쟁이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면 서로 웃음을 터뜨리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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