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과 붙박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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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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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과 붙박이장
 
 이사철이다. 이때가 되면 많은 가정이 각종 가재도구를 싣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찾아간다. 트럭 위에 바리바리 쌓인 짐과 그 가운데 자리한 큼직한 장롱은 이삿짐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여러 친지나 친구들이 이삿짐을 거들어주었으나 요즘에는 대행업체에서 모든 것을 처리해준다는 점이다.

 ‘장롱(欌籠)’은 우리가 만든 국한자(國漢字)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우리주거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우리 조상들은 목(木)과 장(藏)을 합해 ‘물건을 감추어두는 나무상자’라는 뜻의 ‘장(欌)’자를 만들었고, 여기에 ‘물건을 넣는데 쓰는 도구’라는 의미의 ‘롱(籠)’을 더해 우리식 단어를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구별이 뚜렷하므로 철에 따라 여러 종류의 옷들이 필요하며 이것들을 넣어 보관할 수 있는 장과 농이 있어야 한다. 여러 층으로 되어 있어도 옆널(양쪽 옆의 널빤지)이 길게 하나의 판으로 된 것은 ‘장’이라 하는데, 이것에는 2층과 3층장이 있다. 이에 반해 2층, 3층이 각각 분리되어 구성된 것을 농(籠)이라 한다. 장과 농은 우리네 전통가구를 대표하는 살림품목이었던 바, 딸을 낳은 집에선 오동나무를 심어서 출가할 때 혼수감으로 보낼 장롱 재목으로 대비하는 관습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장롱은 원래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옛 한옥은 구들을 놓기 때문에 방이 매우 작았고, 그에 따라 장롱 역시 아담하고 소박한 멋을 지니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물질문명의 영향으로 집이 커지면서 장롱의 크기가 급격히 커졌으며 벽면 한쪽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장롱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 한때 자개장은 부유층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요즘도 필수 혼수품으로 다뤄지고 있다. 냉난방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이불이 얇아졌음에도 장롱은 불필요하게 커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우리와 다르다. 집을 지을 때부터 벽 한쪽에 벽장을 만들어 이불과 침대에 쓸 도구들을 넣고 옷장을 겸할 수 있게 해놓는다. 가구는 책상과 쇼파 그리고 옷장서랍이 전부다. 남는 공간은 여가와 편안한 생활공간으로 활용한다. 사정이 이러니 이사를 해도 장롱을 가져갈 일이 없으므로 이삿짐도 우리에 비해 간단하다.

 미국의 가구문화가 무조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큰 장롱의 비실용성을 깨달아 붙박이장 또는 실용적 벽장으로 바꾸는 가구가 늘어남을 생각하면 우리의 장롱문화도 이제는 한번 되새겨볼 시기가 아닌가싶다. 무조건 큰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의 크기로 만들거나 미국처럼 의무적으로 벽장을 설치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리할 때 나무의 결을 살려 자연미를 느끼게 해주고 방 한쪽에서 예술품처럼 단아한 아름다움을 내뿜는 우리 전래의 장롱문화도 되살아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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