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살아있는 신, 쿠마리 상징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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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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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살아있는 신, 쿠마리 상징문화
 
 네팔이 ‘양의 나라’라는 뜻이라서 그럴까. 이 나라 사람들의 정서는 참으로 순박하다. 18세기 중엽 라지푸트족이 구르카 왕조를 세운 이후 철저한 쇄국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종교적 색채가 더욱 강해진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연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여겨진다.

 북쪽으로 히말라야산맥에 둘러싸여있고 다른 방향으로도 곳곳을 계곡으로 가로막힌 까닭에 외부와의 교류가 드물었고, 이런 문명적 고립은 사람의 심성을 원초적 상태 그대로 머물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사람 살기에 그다지 알맞지 않은 땅에 굳이 터를 잡고 산 이유는 무엇일까?

 네팔인들은 대부분 구릉에 자리를 잡고 있으나 본디 ‘네팔’이란 인종은 없다. 크게 북부 티베트계 민족과 남부 인도 민족으로 구분되지만 자세히 나누면 36개의 종족이 섞여 사는 다종족 국가인 것이다.

 출신이 다르면 다투기 쉬운 법이다. 하지만 네팔은 소수 왕족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가난한 평등’을 누리면서 낙천적으로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예컨대 불편한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불편 속에서 얻은 작은 물질에도 감사하며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지혜를 존중한 것이다. 또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남자는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불필요한 마찰의 근원을 없애고 있다. 이들이 오랜 세월 외진 곳에서 큰 불만 없이 잘 살아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네팔은 불교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힌두교도가 훨씬 많다. 인구의 90%가 힌두교도이고, 불교도는 7%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팔은 두 종교의 조화를 통해 신성함을 한껏 이끌어내고 있으니 그 대표적 상징이 ‘쿠마리’이다.

 쿠마리는 ‘살아있는 여성 신’을 가리키는 말이며 네팔 사람들로부터 신과 같은 존재로 모셔진다. 이는 구체적 실체가 아니라 상상의 존재 혹은 그 존재를 표현한 조각상을 신성하게 모시는 여타 종교와 극명하게 다른 점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온다.

 멀고먼 옛날 탈레주라는 여신이 잠시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빌려 이 나라에 나타났다. 왕은 여신을 정성스럽게 모시다가 정욕이 강해지면서 그만 이성을 잃고 범하려 들었다. 여신은 크게 화를 내며 즉시 사라져버렸다.

 왕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면서 뉘우치는 기도를 올렸다. 여신이 왕의 말에 귀 기울일 리 없었다. 하지만 왕은 날마다 여신에게 기도드리면서 제발 돌아와 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여신은 왕의 반성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나타나는 대신 생리를 시작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를 선택해서 자기 분신처럼 모시라고 명했다. 왕은 여신의 말을 받들었다. 그렇게 하여 ‘쿠마리’가 신으로 모셔졌다.

 10세기 이전부터 이어져온 쿠마리의 조건은 간단하지만 그 자격과 선정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우선 쿠마리는 샤카족이어야 한다. 샤카는 석가모니가 속한 부족이니 기본적으로 쿠마리는 불교의 신성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쿠마리 선정은 나라에서 주도하며 성직자를 통해 결정한다. 즉 정부관리와 성직자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후보를 찾는데 그 선택이 또한 절묘하다. 쿠마리와 왕의 천궁도가 갈등이 없는지 살펴 상징적으로 국가와 종교의 협조적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밖에도 쿠마리가 되려면 여러 가지 육체적․정신적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그 조건은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몇 가지 알려진 것으로는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칼에 가지런하고 온전한 치아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피부에 상처자국이 없고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침착하고 대범해야 한다.

 침착함 여부는 빛이 전혀 없는 어둔 방에 가둬놓고 하루를 보내게 하는 실험으로 판별한다. 소, 양, 닭 등의 머리가 피 냄새를 풍기는 그 방에서 무섭다고 뛰쳐나오면 실격이고, 공포를 참고 견디면 비로소 신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 선정된 쿠마리는 사원에 격리되며,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 경배를 받을 뿐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단 하나의 예외는 해마다 가을에 열리는 힌두교 축제 때만 국왕과 함께 거리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준다.

 요컨대 쿠마리는 너무 먼 미래보다 가까이에서 희망을 확인하고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자 전략에서 나온 상징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쿠마리를 뽑는 것이나 쿠마리가 왕궁 근처에만 있지 않고 네팔 곳곳에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만 수도 카트만두의 쿠마리는 ‘로열 쿠마리’라 더욱 신성하게 여겨질 뿐이다.

 이렇듯 신성한 쿠마리는 초경이 시작되거나 몸에서 피를 보면 즉시 그 신성함을 잃는다. 생리는 정욕, 흘러나온 피는 동물 본능의 솟구침을 뜻하는 까닭이다. 그 논리가 외부인의 눈에는 비합리적이거나 비인격적으로 비춰지지만 네팔 사람들은 ‘신성’이 정욕에 물들지 않은 ‘순수’에 있다고 믿기에 오늘날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네팔이 문명의 욕망에 지배되지 않는 한, 쿠마리는 영원히 네팔에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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