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 다른 모습으로 생존한 세계문화유산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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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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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다른 모습으로 생존한 세계문화유산 도시
 문화재청 <월간 문화재 사랑> 2016년 4월호
 
크라쿠프와 르 아브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이유
크라쿠프는 폴란드인들이 5백여 년 동안 수도로 삼은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국토 대부분이 폭탄으로 파괴되는 상황에서 운 좋게 피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 여기에는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연합군의 폭격 자제도 한몫했다. 유네스코는 역사성을 높이 평가하여 크라쿠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반면, 프랑스 서북부 항구도시 르 아브르는 영불해협을 마주한 노르망디 끝자락에 위치한 데다 대서양 연안 특유의 자연환경으로 일찍부터 사람들의 출입이 잦았다. 19세기에 많은 화가들이 찾아 머물렀던 곳이며,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남녀 주인공이 마지막에 가고 싶어 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르 아브르는 불행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됐고, 추후 과감한 건축 설계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재건 도시 르 아브르는 현대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제2차 세계대전을 비껴간 ‘크라쿠프 역사지구’
크라쿠프는 11세기 이후 폴란드 왕국의 수도로 번성을 누렸으며, 13~16세기에는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와 더불어 중부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런 만큼 뛰어난 건축물이 많이 세워졌고 폴란드인은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 현재까지도 중세 시대 교회 58개를 비롯해 수백 개의 역사적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평화로운 행복은 잠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탱크부대를 앞세워 폴란드를 가장 먼저 정복했고, 크라쿠프에 독일군 사령부를 두었다. 크라쿠프가 어떤 곳이기에 그랬을까?
크라쿠프에는 터키군 공격에 대비해 14세기경 자연석으로 축성한 철벽같은 옹성이 있었다. 또한 중세 폴란드 왕실의 금고로 불린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이 있다. 지하 325m 깊이에 300여km 에 걸쳐 개발된 거대한 소금 광산은 매우 유용한 자원이다.
 
그런가하면 크라쿠프는 1596년 폴란드 왕국이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긴 후에도 왕의 대관식을 치른 역사적 정통성을 간직한 유서 깊은 도시다. 폴란드를 자국 영토로 생각했던 히틀러는 이곳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을 정복하려 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이 있다. 크라쿠프가 그랬다. 히틀러는 폴란드 곳곳을 약탈하면서도 사령부가 있는 곳이기에 크라쿠프만은 그대로 두었다. 연합군도 공격을 자제한 덕분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크라쿠프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아름다운 크라쿠프의 문화는 가로, 세로 220m 정사각형 구시가지 광장에서 시작된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광장 남서쪽 바벨 성을 중심으로 도시가 건설되고, 타원형 모양의 구시가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 밖에 크라쿠프 역사지구로 통하는 관문이자 폴란드 고딕 건축 걸작인 플로리안스카 성문, 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100m 길이 직물회관, 두 개 첨탑이 인상적인 성 마리아 성당 등 역사지구에는 볼거리가 가득하다.

햇빛의 도시로 재건한 도시 ‘르 아브르’
르 아브르는 ‘빛의 도시’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곳이다. 201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2억 원에 팔린 초창기 사진작가 귀스타브 르 그레이 작품 <르 아브르 항을 떠나는 배들>의 촬영지이자, ‘인상파’라는 명칭을 탄생시킨 클로드 모네 작품 <인상, 해돋이>가 그려진 곳이기도 하니까.
19세기 말엽 전통적 표현에 식상함을 느낀 프랑스 화가들이 르 아브르에 온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인상, 해돋이>가 1872년 11월 13일 오전 7시 35분 르 아브르 항구의 한 호텔에서 바라본 일출을 캔버스에 옮긴 것이라는 최근 연구가 뒷받침하듯, 르 아브르는 햇빛의 도시 그 자체였다.
 
르 아브르는 교역 항구로도 인기가 많았다. 신대륙 탐험선 출발지이자 세계 각국 무역선의 통로 역할을 했다. 영국과 가까워 양국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항구의 활기와 햇빛 눈부신 해변의 여유가 공존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노르망디 해안을 둘러싼 공방전이 벌어졌고, 연합군과 독일군이 번갈아 르 아브르를 폭격했다. 주요 시설과 건물이 모조리 파괴당해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정부는 유명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에게 도시 재건을 의뢰했다. 페레는 한정된 예산 속에서 1만여 가구 이재민 주거 문제까지 해결하는 획기적인 건축을 선보였다. ‘콘크리트의 시인’으로 불린 페레는 조립법과 콘크리트 활용을 통해 건축물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6m 24cm 길이로 공간을 모듈화한 아파트는 이 프로젝트의 절정이다.
그 이전까지 집은 돌이나 벽돌을 쌓아올리는 조적식 공법으로만 지어졌는데, 페레는 건축이 쉽고 비용이 적게 사용되면서도 단순하고 기하학적이며 규칙적인 건축을 보여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녹지 공간을 적절히 배치하여 자연 친화성을 강화했다.
크라쿠프는 정통성이 있기에 보존된 반면 르 아브르는 절망 속에서 희망으로 태어났다는 점은 극히 대조적인 면이다. 그렇지만 크라쿠프는 역사유적 보존에서, 르 아브르는 공동주택 아파트의 효시로서 본보기가 된다는 점은 같다. 연륜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결국 인간의 관심과 노력이 아름다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글‧박영수(테마역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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