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여신, 클로리스와 플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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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분 류 신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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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여신, 클로리스와 플로라
 
장미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며, 특히 젊은 연인들 사이에는 ‘정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꽃으로 통한다. 장미는 모양이 예쁠 뿐만 아니라 색깔이 화려하고 다양한데, 유독 파란색 장미만은 없다. 왜 그럴까?

  그 유래는 로마신화에 전해온다. 로마신화에서 꽃의 여신 플로라는 숲의 요정 님프를 무척 사랑하였다. 님프가 죽자, 플로라는 신들의 집회소인 올림피아에 가서 이 시체를 모든 꽃들이 우러러보는 영원한 꽃으로 부활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플로라의 애원이 너무나도 간절하기에 아폴로 신은 생명의 빛을 내려 꽃으로 되살려 주었다. 이때 비너스 신은 아름다움을, 바커스 신은 향기를, 그리고 플로라 신은 붉은 꽃빛깔을 내렸다. 그리하여 숲의 요정은 장미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데 꽃빛깔을 정할 때 플로라는 차갑고 죽음을 암시하는 파란빛만은 내리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이별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영원한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서 파란색을 피하여 붉은색을 준 것이다. 순결의 백장미와 정열의 붉은 장미는 많아도 파란 장미가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으며, 장미가 ‘사랑’을 상징하는 것도 이 신화에 연유한다.

  꽃을 뜻하는 영어 ‘flower’의 어원이 된 플로라(Flora)는 고대 그리스의 클로리스(Chloris)와 같은 성격의 여신이다.
  클로리스는 본디 들판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Zephyrus)가 클로리스의 아름다움에 반한 나머지 강제로 납치하여 가두어버렸다. 그리고는 자기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느닷없는 유괴에 분노한 클로리스는 제피로스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채 싸늘하게 돌아앉았다. 그러자 당황한 제피로스는 클로리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꽃에 대한 모든 지배권을 주면서 자기의 진실한 사랑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때부터 클로리스는 꽃을 만드는 능력을 갖게 됐으며, 이후 남성이 여성에게 구혼할 때 꽃을 바치는 풍습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여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도구가 하필이면 왜 꽃이었을까?
  꽃은 인류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은 그리스의 아테네인들은 따뜻한 기후와 풍요로운 먹을거리에 만족해하며 비로소 ‘배부른 자의 여유’를 느꼈다. 산들거리는 하늬바람과 들판에 화사하게 핀 꽃들은 행복 그 자체였다.

  북풍이 매섭고 찬바람이라면 서풍은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었다. 때문에 아테네인들은 봄에 불어오는 서풍을 생명을 가져다주는 운반자로 생각했고, 꽃을 행복의 절정으로 여겼다. 다시 말해 그리스인들은 일정한 문명을 이루고 사는 자신들의 세계를 지상의 낙원으로 여기면서 북쪽 야만인들과의 차별성을 꽃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선물로서의 꽃은 무슨 뜻일까?
  꽃이 가득 핀 벌판은 생각만 해도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흔히 천국을 상상할 때 꽃이 만발한 풍경으로 묘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꽃을 선물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여성에게 건네주는 꽃’은 ‘꽃밭처럼 행복한 상태로서의 인생을 안겨주겠다’는 뜻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리스 여성이 수동적 운명에 싸여 지내지는 않았다. 그리스시대에는 여성의 인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었는데, 클로리스의 능력에도 그런 면모가 담겨 있다. 예컨대 헤라의 헤파이스토스 출산이 그것이다.

  제우스가 아테나를 머리로 낳자, 그에 분노한 헤라는 그에 맞서는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클로리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헤라는 남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식을 낳고 싶다고 말했고, 클로리스는 자궁에 닿기만 해도 임신할 수 있는 꽃을 주었다. 그 결과 헤라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다. 헤파이스토스가 도구와 무기를 만드는 신이 된 것은 ‘생산’의 상징성과 이어져 있는 자연스런 일이다.

  클로리스가 그리스신화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헤라를 도와준 그 사건은 요즘의 대리 출산이나 시험관 아기 따위의 인공적 출산을 예언하는 것 같아 놀랍기도 하다.

  클로리스는 로마시대에 이르러 플로라라는 이름으로 다시 탄생했다. 또한 이름만 바뀐 게 아니라 성격도 다소 달라졌다. 화관을 쓰고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꽃잎을 길거리에 뿌리는가 하면 밝게 떠들고 웃기를 즐겼다. 한마디로 황홀함에 젖은 채 본능을 발산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생활이었다.

  플로라의 이런 모습은 위엄과 권위를 강조하는 대개의 신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로마인들은 플로라에게서 매춘으로 상징되는 타락을 맛보는 동시에 순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했기에 고대 로마에서는 해마다 봄이 오면 꽃의 여신 플로라를 추앙하는 축제를 열어 따뜻한 계절의 시작을 마음껏 즐겼다. 젊은 남녀가 자유롭게 만나 춤추고 사랑하는 이 축제의 이름은 플로라리아(Floralia)였으며, 번영의 축제로 이름 높았다. 이 축제는 또한 본능을 발산하는 관능적 축제이기도 했다. 한바탕 축제가 끝나면 갑자기 높아진 출산율이 그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꽃의 여신에 대한 관심은 로마 멸망과 더불어 중세에 잠잠하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부활하였다. 많은 예술가들이 플로라를 찬양했고 화가들이 작품에 등장시켰다. 보티첼리는 그 대표적인 작가로서 명작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통해 여신의 아름다운 관능미를 보여주었다.

  오늘날에도 서양인들은 꽃을 행복한 세계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꽃이 많은 공간을 우리는 ‘꽃밭’이라고 표현하지만, 서양인들은 ‘flower bed’(꽃 침대)라고 하며, (예술 운동 등의) 전성기를 ‘flowering’이라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결혼식에서 축복의 상징으로 꽃을 든 소녀를 가리켜 ‘flower girl’이라고 한다.
  언제까지나 꽃은 아름다운 행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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