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여신, 포르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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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분 류 신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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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여신, 포르투나
 
동양의 우주철학에 따르면 하늘과 땅이 만나 생명이 탄생했는데, 흥미롭게도 신화로 본 세상사는 지혜신화 역시 같은 내용으로 시작한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만나 아들․딸을 각각 여섯씩 낳으니 이들이 바로 티탄(Titan)이다. 티탄은 거대한 몸집을 지니고 있었기에 훗날 ‘거물’ 혹은 ‘천하장사’를 뜻하는 영어 ‘타이탄(titan)’의 어원이 되었다.

  티탄 12남매 중 가장 강력한 신은 바다와 물을 지배한 장남 오케아노스(Oceanos)였으며,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튀케(Tyche)도 역시 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몸집에 의해 결정된 지배자는 오래 가지 못했다. 막내아들 크로노스는 어머니 가이아의 도움을 받아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반역에 의해 서열이 무너지고, 음모에 의해 질서가 파괴되는 첫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또한 자연계의 생존법칙이 두뇌싸움에 달려있음을 일깨워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크로노스의 통치 시기는 인류의 황금시대였다. 넉넉한 식량을 바탕으로 다툼도 범죄도 없는 평화의 시대였다. 크로노스는 그런 현실에 만족해하며 영원한 제왕을 꿈꾸었다. 하지만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긴다’라는 내용의 불길한 신탁(神託)이 문제였다. 크로노스는 아내 레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데메테르를 비롯한 자식 여섯을 태어나자마자 차례로 삼켜서 우환을 없앴다. 이때 레아는 막내 제우스를 감추고 배내옷을 아기처럼 감싸 삼키게 함으로써 단 하나의 자식이라도 살리는 모성애를 발휘하였다.

  결국 크레타섬에서 몰래 성장한 제우스는 아버지를 몰아내고 지배자가 됐으며, 동생들을 토해내게 한 다음 저승이나 바다 등에 대한 권리를 넘겨주었다. 다시 말해 제우스는 반역 자체는 아버지의 선례를 참고하여 성공했지만, 이후 독재가 아니라 분권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그 뒤 몇 차례 처절한 전쟁을 치르기는 했으나 제우스를 주신으로 하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지위를 확고히 한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런데 이런 격변 속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은 여신이 있었다. 행운을 주관하는 ‘튀케’였다. 그리스에서 튀케는 운명과 행운을 담당하는 여신으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어떤 일의 성사에 대한 자신이 없을 때 튀케의 이름이 곧잘 불렸고, 튀케는 기분 좋을 때면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고대 로마인도 운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기에 (튀케의 다른 이름인) 포르투나(Fortuna)를 숭배했다. 로마의 동쪽에 거대한 신전을 세워 전투의 승리를 기원하는가하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간절한 행운을 빌기도 했다. 요컨대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포르투나 여신은 좋은 운명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운명이란 어떤 것일까? 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큰 희망은 넉넉한 식량이었으므로 당연히 많은 곡식이나 가축의 다산이 곧 행운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포르투나는 모든 것을 불어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존재로 모셔졌고, 포르투나가 약간의 은혜만 베풀어도 곡식창고이든 가축우리든 간에 가득 넘쳐나게 된다고 믿어졌다.

  그렇지만 로마인들은 행운이 한사람의 독차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아마도 민주사회를 꿈꾸었던 그리스인들의 평등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인들은 튀케의 활동이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성공시키고 어떤 사람은 실의에 빠뜨린다고 생각했는데, 이 또한 행운이란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해마다 한 차례씩 1월에 거행된 포르투나 축제에 노예도 참여시켰다. 이 축제는 노예와 자유민이 함께 참가할 수 있었던 얼마 되지 않는 축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일반적으로 노예나 죄수들이 종교적인 행사에 우연히 참가하기만 해도 행사를 더럽힌다고 생각했으므로,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노예와 죄수는 모두 제외시키게끔 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포르투나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기회의 여신이기도 했다.

  포르투나는 중세에도 ‘행운의 수레바퀴’로서 널리 사랑을 받고 또 생존했다. 여기서의 ‘수레바퀴’는 회전하면서 어느 곳에 멈출지 모르는 기회의 우연성을 상징한다. ‘행운의 절정에’라는 뜻의 영어 숙어 ‘at the top of Fortune's wheel’(직역하면 ‘행운의 바퀴 꼭대기에’)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행운’과 ‘기회’의 함수관계를 보여주는 말이다.
  지금도 미국 TV방송국에서는 수레바퀴 모양의 원판을 돌리고 구슬을 떨어뜨려 행운의 상품을 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고, 비슷한 방식으로 로또 복권을 추첨하고 있다. 이 또한 포르투나의 문화유산인 셈이다.

  포르투나는 중세시대를 거쳐 ‘행운’을 뜻하는 영어 ‘포츈(fortune)’의 어원이 되었다. fortune는 ‘우연’이라는 뜻의 라틴어 fors에서 유래됐다고도 하는데, 어느 설이 옳든 간에 포르투나는 ‘기회’를 인격화한 여신임은 분명하다.

  그랬다. 서양인들에게 있어 행운의 시작은 ‘기회’였고, 완성은 ‘늘어남’이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기회를 움켜쥐는 자가 행운을 얻는 자일지니, ‘행운의 여신은 용기 있는 자를 좋아한다.’(Fortune favors the brave.)는 속담은 그런 통념에서 생겼다.

  또한 ‘기회’는 재산과도 같은 의미로 통하기도 했다. 로마 사람들은 매년 포르투나 축제일(8.17.)이 다가오면 다투어 문 열쇠를 불 속에 던졌다. 불행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소유’를 상징하는 열쇠를 정화하는, 일종의 액막이 행위였던 것이다. 고어 영어 fortune은 중세 때 ‘재산이 있는 여자’를 뜻했는데, 이는 행운을 곧 재물과 동일시했음을 나타낸다.

  로마의 이런 풍속은 부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부귀의 상징 열쇠에 ‘기회’의 의미를 추가하여 ‘행운의 열쇠’를 낳기에 이르렀다. 그러하기에 오늘날 귀빈에게 주는 ‘행운의 열쇠’는 ‘행운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당신에게 드리니 당신은 그것을 가지기 바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리하자면, 행운은 우연히 다가오는 기회를 꽉 움켜쥐는 것이지, 도박을 통해 손에 넣는 횡재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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