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 누구를 위한 미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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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분 류 신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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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디테, 누구를 위한 미모인가
 
  1820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에게해의 밀로 섬에서 한 농부가 이상한 조각상을 발견했다. 높이 2미터에 이르는 그 조각상은 상반신은 나체였고 하반신은 주름진 옷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어쩐지 귀한 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여 농부는 비싼 값에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현지 프랑스 대사관이 재빠르게 움직여 농부에게 은근히 겁을 준 다음 헐값으로 사들였으며 본국의 루이 18세에게 바쳤다. 이리하여 루브르궁전에 소장되었으니 이 조각상이 그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이다.

  출토지에 근거하여 이름 붙여진 ‘밀로의 비너스’는 오늘날 모나리자와 함께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몰리는 미술품이자, 서양여인들의 이상적 미인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베누스(venus)’에서 유래된 ‘비너스’는 고대 그리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와 같은 성격의 여신(女神)으로 아름다움을 관장한다. 그리스어로 아프로스(aphros)는 ‘거품’을 의미하는데서 짐작할 수 있듯, 아프로디테는 우라노스(하늘)의 아들 크로노스가 아버지의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던진 뒤 생겨난 하얀 거품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태어났다. 이는 남성의 정액을 생명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정서를 보여주는 것인바 그리스인의 사고관은 근본적으로 남성우월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프로디테는 탄생은 물론 그 후의 행적에서 더 큰 화제를 계속해서 낳았다. 올림포스 신전에 도착한 아프로디테를 보고 제우스는 그 자리에서 파격적으로 주신(主神)의 대열에 넣어 주었고, 그곳에 모여 있던 여러 남신들이 모두 그녀의 미모에 홀려 다투어 사랑을 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태양을 상징하는 잘생긴 아폴론도, 바다를 지배하는 근육질의 포세이돈도 그저 아프로디테의 눈길만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가장 못생긴 헤파이스토스를 남편으로 선택했다. 남신들에게는 의외의 결과였으나 정작 아프로디테에게는 깊은 속뜻이 있었다.

  헤파이스토스(Hephaestus)가 누구인가?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적자(嫡子)이지만, 불운하게도 절름발이라는 신체장애를 안고 태어나 홀대받은 불(火)과 대장장이의 신이다. 아프로디테가 그런 헤파이스토스를 택한 이유는 기술을 가진 능력자라는데 있었다. 당시 그리스는 철기문화시대로서 쇠를 다루는 사람이 가장 유능한 실력자로 여겨졌는데, 이런 정서를 감안하면 아프로디테의 눈에는 헤파이스토스가 가장 능력 있는 남자였던 것이다.

  사실 이렇듯 어울리지 않는듯하면서도 실제적 이유가 타당한 남녀 결합은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를 원하고, 여자는 능력 있는 남자를 원하는 풍토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아프로디테의 어떤 점이 남자들에게 아름답게 보였을까? 첫 번째 매력은 생식 능력에 있었다. 풍만한 젖가슴과 넉넉한 몸매는 다산을 기원하는 종족 번식의 본능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못지않은 매력이 있으니 바로 팔등신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아프로디테 여신상을 만들면서 팔등신(八等身)의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후 서양미인의 기준 몸매가 된데서 알 수 있듯 보기 좋은 비율미(比率美)가 바로 아프로디테의 진정한 아름다움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인들이 ‘황금비율’을 발견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라 말할 수 있다.

  아프로디테의 매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보여주는 듯 감춰지는 ‘은근한 노출’이 남성의 관심을 잡아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그에 맞게 처신했다. 예컨대 가슴을 노출하여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하반신은 슬쩍 가려서 신비감과 호기심을 자아냈다. 다시 말해 아프로디테는 ‘수치의 허리띠’를 띠고 있음으로써 다른 여신들과의 가장 큰 차이를 보였는데, 아프로디테를 아름답게 보이게 했던 것은 바로 부끄러움을 아는 여인의 다소곳한 신비성에 있었던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허리띠는 '케스토스'라고도 불렸으며 애정을 일으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애정이 아니라 실용적 필요에 의한 결혼은 금방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아프로디테 역시 그러했다. 그녀는 남편 몰래 잘생긴 아레스(전쟁의 신)와 사랑을 나누면서 쾌락을 즐겼고, 그와의 사이에서 하르모니아(조화)와 데이모스(공포)와 포보스(두려움)라는 세 아이를 낳았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랑과 전쟁이 균형을 이루면 ‘조화’를 낳지만 균형이 깨지면 ‘두려운 공포’를 낳음을 상징한다. 너무 편하게 대하거나 혹은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거리감이 생기거나 다투게 되는 인간관계를 감안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모는 어떻게 누가 평가하는가? 이에 관해서는 ‘파리스의 심판’에 잘 드러나 있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해 분개한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가 화풀이하고자 피로연 석상에 황금사과를 던졌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씌어 있었고 예상대로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저마다 자기가 가장 아름답다고 다투었다.
 
  결국 세 여신은 깊은 산에서 양을 치고 있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황금사과를 준 다음 가장 아름다운 여자에게 황금사과를 돌려주게 하였다. 이때 세 여신은 각자 파리스에게 환심을 살만한 제의를 하며 매수하려 했다.
 
  파리스는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소개해주겠다’는 아프로디테의 제의를 받아들여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주었다. 이리하여 아프로디테는 신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되었다.

  이 신화는 미인대회가 고대부터 있었음과 동시에 ‘미모는 나의 눈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 인정된다’라는 사회관념을 일러주고 있다. 요컨대 주관이 아니라 객관에 휘둘리는 인간의 엷은 마음 때문에 미인의 기준이 생기고, 시대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는 것이다.

  미모- 혼자 느끼는 행복이 아니라 타인의 부러움을 통해 느끼는 요상한 만족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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