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을 통해본 인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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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분 류 신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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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을 통해본 인간세계
 
고대 그리스인들은 유일신(唯一神)이 아니라 만물다신주의(萬物多神主義)를 믿었고, 수많은 신들 중에서도 태양의 신 ‘아폴론’을 남달리 숭배했다. 왜 그랬을까? 아폴론신화에 그 이유가 숨어있으니 찬찬히 살펴보자.

  아폴론의 탄생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헤라 몰래 제우스와 정을 통하여 아이를 임신한 레토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해산할 곳을 찾았지만, 헤라의 방해 때문에 장소를 찾지 못했다. 레토는 쓸모없는 땅이나 다름없던 델로스 섬에서 신전 건설을 약속한 후에야 겨우 몸을 풀 수 있었다. 하여 태어난 아이가 쌍둥이 남매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이다.

  아폴론은 며칠 후 신들의 술 넥타르와 음식 암브로시아를 먹고 청년이 됐으며, 대지에 틈새가 있는 땅인 델포이에 도착하여 그곳을 지키는 큰 뱀 퓌톤을 죽이고 그 자리에 신전을 세웠다. 또한 아폴론신전 안에는 ‘옴팔로스’라는 대리석이 놓였는데 이는 ‘대지의 배꼽’이라는 뜻으로서 ‘지구의 중심’임을 상징했다. 이후 델포이는 그리스 최대의 성지로서 아테네인의 존경을 받았다.

  아폴론(Apollon)은 누구인가? 그 이름은 ‘미남 청년’이란 뜻으로서 제우스 다음 가는 권력을 지닌 태양의 신이자 예언․음악․의술․지성․학문․궁술․예술․변론 등 다방면의 신이다. 하프와 활을 들고 다니며 신탁(神託)을 주관하면서 오만한 인간을 뜨거운 태양으로 징벌한다. 그뿐 아니라 외모는 신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큰 키와 물결처럼 굽이진 곱슬머리를 하고 있으며, 성격은 침착하고 차분하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많은 요정과 인간들이 그를 한 번 보고나면 그리워서 상사병이 날 정도이다.

  이렇듯 그리스인들이 아폴론을 거의 흠이 없을 만큼 완벽한 존재로 상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아폴론은 그리스인이 지향하는 이상(理想) 그 자체였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뒤, 야만성을 뛰어넘는 독자적 문명을 지향했는데 그 구체적 상징이 바로 아폴론이다. 아테네 근교의 언덕에 있는 신전을 세계의 중심으로 명명한 것이나, 여러 정보에 달통한 만물박사를 지성적인 인간으로 우대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파악할 일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인들은 본능에 지배당하고 본능만을 추구하며 사는 인간을 아주 저속하게 여겼으며, 동물과의 차별성이 이성(理性)에 있다고 굳게 믿었다. 또 운명만을 탓하며 운명에 지배당하는 인간을 어리석게 보았다. 아폴론이 헤라의 방해를 뚫고 태어난 출생과정이나 델포이에 신전을 세운 일이 한결같이 ‘기존에 대한 도전과 성취’라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음은 그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조각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는 물질에 인간의 정신을 불어넣는 ‘창조’에 다름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리스인들은 지구상 최초의 누드 조각상을 만들면서 그 모델을 아폴론으로 삼았으니, 여기에도 이성 우대의 정신이 여실히 담겨 있다. 단련된 근육은 오랜 기간 부단히 운동하여 얻어지는바 ‘근육 남성미’는 ‘절제된 힘’을 상징하고, 과장되지 않은 ‘사실적인 조각’은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는 ‘현실주의’를 보여주며, ‘잘 생긴 중성적 얼굴’은 남성 여성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평화주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이나 혼란기에는 강력한 힘을 지닌 남성미가 우대받는 동시에 상상으로 행복을 꿈꾸는 반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대에는 부드러운 여성미가 이상적으로 여겨지고 현실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이성을 중시하는 태도는 합리와 과학을 낳기 마련이어서 그리스인들은 수학이나 과학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산수(算數)를 넘어서서 여러 분야에까지 영향을 끼친 피타고라스학파의 기하학이나, 탈레스가 기원전 585년 최초로 일식(日蝕)을 예언하여 밀레투스와 리디아의 전쟁을 중지시킨 일화 역시 과학적 사고로 야만적 폭력을 물리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인들은 ‘문(文)’을 우대하기 위해 ‘무(武)’를 홀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헤라클레스의 신화를 통해서 힘에 대한 정서를 충분히 공감하고 있음을 나타냈고, 생활 속에서도 그런 관념을 드러냈다. 예컨대 그리스인들은 귀한 손님에게 젊은 헤라클레스와 월계관을 쓴 아폴론의 모습이 새겨진 항아리를 선물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성적인 인간은 완벽한 존재일까? 그리스인들은 그 점에 대해 아폴론의 연애들을 통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많은 님프와 인간들이 그를 사랑했지만 아폴론은 대체로 사랑에 실패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에로스를 생각 없이 흉보다가 에로스의 화살을 맞아 님프 다프네를 좇아다녀야 하는 수모를 겪는가하면, 자신을 흠모하는 수많은 여인들과 제대로 사랑다운 사랑을 나누지도 못했다.

  합리적이고 유능한 아폴론이 왜 사랑에 있어서는 서툴렀을까? 그것은 사랑의 본질이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있음과 관련 있다. 바꿔 말해 이성적인 아폴론은 질서를 파괴하는 격정을 이해하지 못한 바, 열렬한 마음이 동반되는 사랑의 열정에 빠져들지 못한 것이다. 그랬다. 그리스인들은 이성에 의한 사회를 궁극적인 유토피아로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그곳에서는 사랑의 열정이 부족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결국 ‘학문은 사랑과 동반의 관계에 서기 힘들다’는 게 그리스인들의 결론인 셈이다.

  그 외에도 그리스인들은 아폴론으로 인간의 진화 혹은 특성을 간파한 면모가 적지 않다. 유전인자에 있어서 직모(直毛)보다 우성(優性)인 곱슬머리를 비롯해, 큰 키는 (현대인의 평균 키가 중세인보다 20㎝이상 큰데서 알 수 있듯) 인간의 키가 계속 커질 것이라는 예언이며, 지성의 신이 동시에 점술을 관장했다는 점은 미래 예언은 시대를 초월해 변함없이 인간의 관심사임을 암시하고, 잘난 외모는 겉모습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요컨대 아폴론은 아름다운 질서를 추구하는 사회적인 인간,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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