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노출과 해방에 관한 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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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분 류 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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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노출과 해방에 관한 역사문화
 
  아프로디테 조각상의 모델이기도 했던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창녀 프린느는 한때 사형에 처할 만한 죄로 기소당해 법정에 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불리해지고 그녀가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 확실해지자 그녀의 변호사 하이퍼레이데스는 그녀를 법정 중앙에 서도록 불러냈다. 그리고는 갑자기 프린느의 얇은 옷을 찢어 모든 사람이 그녀의 벌거벗은 가슴을 보도록 했다. 그런 뒤 하이퍼레이데스는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인정해 줄 것을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라 당황한 재판관은 그녀에게 자비를 베풀어 사형을 면하게 했다.

  이 사건은 단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법령을 새로 추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즉 그리스 입법부는 그녀를 석방하고 난 후 새로운 법을 제정하였는데, 그것은 앞으로 어떤 변호사도 법정에서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탄원해서는 안 되며 어떤 피고도 법정에서 옷을 벗어서는 안 된다는 법령이었다.

  이사도라 던컨은 미국 출신의 무용가로 전통적 무용을 배격하고 자연 모습 그대로의 무용에 뜻을 두었던 최초의 여성이자, 인간 정신의 해방을 부르짖었던 댄서였다. 아직도 여성이 사회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고 있던 19세기말, 이사도라가 당시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그녀가 맨발로 춤을 추었다는 사실이었다.

  발레란 으레 튀튀(발레복)와 토슈즈(발레용 신발)를 신고 춤을 추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사회분위기 속에서, 이사도라는 이같이 신체를 구속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가능한 한 육체를 자유롭게 해방시켰던 것이다.

  이사도라는 의상으로 또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그것은 우연한 사고가 계기가 되었다. 1898년 4월 뉴욕 윈저호텔의 대화재로 모든 공연용 의상을 소실해버리자, 이사도라는 거의 알몸을 드러낸 채 임시변통의 옷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관객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이 선정적인 의상에 대해서 어떤 신문은 ‘붕대의 일종’이라고 비꼬고 심지어 누드댄싱이라고 혹평했지만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사도라는 낡은 윤리로부터 여성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내의와 신발을 벗어던지고 자유의 춤을 추었다. 이사도라에게 있어 옷을 벗어던짐은 기존 관습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프린느나 이사도라의 일화에서 느낄수 있듯 인류는 예나 지금이나 인체 노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인류는 왜 그토록 인체 노출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오랜 세월 노출에 대해 제약과 구속을 하였을까?

  그 답은 벌거벗은 몸의 느낌에 있다. 나체 또는 누드는 ‘동물적’인 느낌을 주며, ‘동물적’이라함은 ‘본능적’이란 말과 동의어로 통하고, 본능의 대표적 욕구는 식욕과 성욕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의 개성을 중요시여긴 사회에서는 자유스러움이 존중된 반면 이성이 본능을 억누른 사회에서는 금욕이 강조되었다.

  역사의 물결에서도 인체 노출 유행 여부는 그 시대의 상황을 알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다. 대체로 어두운 시대에는 인체를 가리는 것이 유행이었고 풍요로운 시대에는 몸을 드러내 놓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인체 노출 억제는 단지 성본능의 억제만을 뜻한 것이 아니고 식욕 억제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었으며, 인체 노출은 성본능의 방임과 먹을 것 걱정없는 풍요로운 사회분위기를 상징했다. 요컨대 인류는 옷을 통해서 이성은 물론 원초적 감정마저 통제해 왔던 것이다.

  인체를 감싼 것은 옷이며, 옷은 실용적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묘하게도 옷은 인체만을 감싼 것이 아니고 욕망까지도 에워쌓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인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투명한 옷은 꿈틀대는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심리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대 로마 시대에도 한때나마 인체 노출이 유행이어서 철학가 세네카는 근심스러움을 토로하기까지 했다.

  “나는 실크로 만든 옷을 본 적이 있는데 사실 그것도 옷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망설여진다. 왜냐하면 그 옷을 입는다 해도 몸의 모든 부분, 하다못해 음부까지도 그대로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이 옷을 입은 여자들조차도 자신들이 옷을 입은 것인지 벗은 것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여자들은 이미 길거리에서부터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다녔기 때문에 침실에서 은밀히 자신들의 연인에게만 보여줄 것이 없어져 버렸다.”

  유럽인들이 암흑기라고 일컫는 중세시대를 지나 맞이한 르네상스 시대에 여러 조각가들이 인간, 특히 남성의 나체를 조각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인체미 표현이 목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스인들의 자유스러운 정신세계를 표현하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다시말해 벌거벗은 몸은 곧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은 인간의 자유 상태를 상징했던 것으로, 오랜 암흑기 동안 금욕정신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갈구했던 자유정신의 표현물인 것이다.

  금욕주의자들에게 비판의 메스를 가한 사상가도 나타나게 되었는데, 몽테뉴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육체의 욕망은 천시하고 정신만을 높이 쳐들어대는 학자들의 가르침 때문에 사람들은 도덕적인 생활을 매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육체를 천하게 보고 정신의 희생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모든 금욕주의는 고리타분한 것이다. 육체의 욕망을 무시하라는 것은 도대체가 부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 자연스런 생활 속에 누구나 도덕적인 규범을 갖출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보통사람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누릴 권리가 있다. 다만 몸의 건강과 정신의 안정을 헤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그쳐야 한다.”

  인체를 구속하는 것은 인권 구속을 의미하기도 했는데, 여성 인체의 경우 정도가 심했다. 일본 여성의 기모노는 남성의 성적 호기심 충족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며, 중국 여성의 전족은 남성의 성적 쾌락과 소유권 확보 차원에서 행해진 습속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도덕이 강조되었던 시대에는 저고리가 길었지만 퇴폐분위기가 조성된 시대에는 젖무덤이 보일 정도의 짧은 저고리가 유행함으로써 억눌렸던 성의식의 개방 지향성을 보여주었다.

  비단 동양뿐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출은 사회 금기로 통했다. 18세기말의 유럽에서 투피스 상의나 원피스 뒷등을 터서 단추를 단 것은 남편만이 도와줄 수 있도록 기혼 부인에 한해 허용되었다. 블라우스 앞이 터진 것이나 젖가슴 부위에 두개의 포켓이 달린 것도 기혼 여인에 한했던 것으로 아기에게 젖먹이기 편리하도록 고안된 기술적 디자인이었다. 처녀들은 그런 옷을 아무리 입고 싶어도 입을 수 없었다.

  또한 스커트 디자인을 보고 유부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다. 18세기말의 유럽 여성복사를 보면, 여성 하의에 대한 규제는 무척 엄격해서 기혼자가 아니면 스커트 앞자락을 밑까지 터서 단추를 내리달지 못했다. 미혼자 스커트의 경우 반드시 옆을 터서 입었다. 이런 불문율은 19세기초까지 지켜졌다.

  인체 노출에 대한 인류의 금기의식이 얼마나 오랜 세월 지속되어 왔는가는 ‘비키니’ 수영복이 설명해준다. 여성의 치부만을 가린 수영복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핵실험장으로 유명한 비키니섬의 명칭을 갖다붙였겠는가 말이다.

  이렇듯 옷 디자인에 있어서 기․미혼녀의 차별이 심했던 이유는 ‘성 문제’ 때문이었다. 즉 옛날부터 허벅지나 다리는 성적인 곳으로 상징되었던 바, 다리를 노출시킨다는 것은 은밀한 곳을 개방한다는 의미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여성들의 다리는 치마나 스커트로 완전히 덮어서 가려야 했으며, 특히 상류층 사람들은 이성의 자제력과 품위 과시를 위해 더욱 노출을 삼가야 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신체 부위를 정면으로 노출할 수 있는 자격은 ‘성’에 이미 노출된 기혼녀에 한했던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성적 노리개로 여겨졌기에 인체 노출조차 마음대로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인체 노출이 두 가지 이유에서 행해진다고 보여진다. 하나는 섹스 본능을 자극하는 행위, 즉 최대의 섹스어필로서 인체 노출을 한다는 것이다. 미니스커트나 배꼽티가 유행한 시기가 경제적 호황기로서 비교적 생활이 여유로운 시대 배경임을 간파했다면 사람의 식욕과 성욕은 함께 만끽되거나 억눌려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지성이 아닌 외모만으로 평가할수 없다’는 지식인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스 △△대회’, ‘미스터 △△대회’라는 명칭의 세계적 육체미 평가 대회가 행해지는 것도 몸매 감상에 대한 열망 때문인 것이다.

  인체 노출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연정신’에 있다. 즉 자연과 동화하거나 공존하려는 자연정신이 팽배했을 때 인체 노출에 대한 열망이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유럽의 모피 애호자들이 나체로 시위를 하면서 해외토픽란을 장식하는 것이나, 자유주의자들이 나체촌을 세우고, 나체 해수욕장을 만드는 것은 옷이란 곧 인간의 몸을 구속하는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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