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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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분 류 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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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얽힌 이야기
 
 1935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미국 최초로 반 고흐 그림 전시회가 열렸다. 뉴욕의 여러 신문들은 대대적으로 그 소식을 전하면서 고흐의 기묘한 생애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였으며 특히 그가 정신착란을 일으켜 자기 귀를 잘랐다는 일화를 모든 신문이 빠뜨리지 않고 다뤘다.

 화가의 유명세 덕분인지 전시회는 큰 성황을 이루었다. 그런데 전시회장에서 휴우 트로이라는 문화비평가가 친구와 말다툼을 벌이면서, 관객의 대부분이 단순한 호기심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 온 사람들은 진짜 고흐의 애호가가 아니야. 그저 한쪽 귀 없는 화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온 것일 뿐이야.”
 “그건 말도 안돼. 단지 호기심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겠어?”
 “그렇다니까. 좋아, 정 못 믿겠다면 내가 그걸 증명해 보이겠어.”

 다음날 트로이는 정육점에서 쇠고기를 사다가 찌그러진 사람 귀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에 파란 천을 대서 작은 상자에 넣은 다음 고흐 전시회의 한쪽 탁자에 얹어놓고는 그 옆에 다음과 같은 설명문을 달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스스로 잘라 내어 그의 애인에게 보낸 귀. 1884년 12월 24일>
 이후 이 쇠고기로 만든 귀는 즉시 전람회의 인기를 독차지하였다. 많은 관객이 벽에 걸린 걸작품은 대충 보면서 이 귀만큼은 자세히 보려고 다투어 몰려들었고, 어떤 이는 그 귀에 대해 아는체하며 떠들기까지 했다. 이 소동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주최 측 제지로 하루 만에 끝났지만, 인간의 호기심이 어떠한지 명백히 보여주었다.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여!
 ‘호기심’(好奇心)은 문자 그대로 새롭고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뜻한다. 영어 ‘curiosity’는 주의 깊게 보는 것을 뜻하는 라틴어 ‘curiosus’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이때의 대상은 평소 보지 못하던 사물이다.
 호기심은 궁금한 마음에서 일어나며 생존을 위한 관찰에 다름 아니다. 아기들이 고정된 사물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움직이는 것에는 눈길을 보내는 것도 그게 무엇인지 알기 위함이다. 아기는 만약 그 대상이 무서우면 울고 친근하게 느껴지면 방긋 웃음으로써 호기심에 대한 반응을 나타낸다.

 호기심은 본능이다. 따라서 호기심을 억제하기는 매우 힘들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Curiosity killed the cat.)는 영국속담은 신중한 고양이조차 호기심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 때로 호기심을 자제해야 함을 일러주고 있지만 현실은 대부분 호기심을 따라 가기 일쑤이다. 청소년의 술, 담배, 마약, 섹스 등의 문제는 대체로 비뚤어진 호기심과 관계가 깊다.

 그러나 호기심으로 인해 생기는 욕망을 잘 조절하면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어떤 것에 대해 알려고 하는 태도는 자발적으로 지식을 익히고 행동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신사임당 일화에서 그런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시절 그의 이름은 인선이었는데 무엇을 보면 ‘저건 뭐예요?’, ‘그건 왜 그래요?’ 따위 질문을 쉬지 않고 던졌다고 한다. 인선의 호기심이 얼마나 왕성했는가 하면 어느 날인가 바다가 궁금해 경포대까지 걸어가서 직접 구경한 다음 그 풍경을 그릴 정도였다. 신사임당은 그 호기심을 잘 해결해준 어머니 덕분에 바른 인품을 가진 예술인으로 성장했고 자식인 율곡 이이 역시 대학자로 키웠다.

 그런 점에서 ‘천재는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무척 노력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천재는 호기심을 한곳에 집중하여 큰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아인슈타인을 꼽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보여준 나침반에 큰 흥미를 느껴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나침반의 바늘이 일정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게 신기해서 그 이유를 생각하다보니 사물의 뒤에 심오한 진리가 있을 거라는 짐작을 했다고 한다. 이 호기심은 훗날 상대성이론의 발견으로 이어졌으니, 상대성이론은 ‘자기’와 ‘전기’가 ‘전자기’라고 불리는 단일 현상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나침반 바늘을 움직이게 한 바로 그 힘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나에게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열정적인 호기심이 있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호기심덕분에 밝혀진 발견과 엄청난 역사적 진실
 호기심은 인류의 생활을 변화시킨 놀라운 발견을 낳기도 했다. 인류의학사에서 획기적인 예방주사가 바로 그러한 예로서,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우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천연두에 대해 영구적 예방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제너는 평소 호기심이 많고 관찰력이 예민했기에 농장에서 경험한 일에 꾸준한 노력을 곁들여 백신을 발명할 수 있었다.

 호기심으로 밝혀진 발견은 의약에만 그치지 않으며 고고학에서도 그런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1861년 프랑스 박물학자 앙리 무오는 표본채집을 위해 캄보디아에 들렀다가 그곳 사람들로부터 정글 속에 저주받은 신전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앙리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어서 탐험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앙코르와트를 발견하여 세계에 알렸다. 앙코르와트는 ‘거대한 사원’이라는 뜻으로 크메르인들의 우주관을 담은 건축물인데, 앙코르 왕조의 멸망과 더불어 사라졌다가 400년만에 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이었다. 앙코르와트는 그 거대한 규모는 물론이려니와 독특한 유적임을 인정받아 199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런가하면 슐리만의 트로이 발견은 그보다 더욱 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19세기초 독일의 시골에서 태어난 슐리만은 어린 시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너무나 감동 깊게 읽은 나머지 사실로 믿어버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역사학자들은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전설로 여기고 있었지만, 슐리만은 특히 트로이 이야기를 절대적 사실로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트로이 유적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 모습이 너무 궁금하다.’

 슐리만은 아예 트로이 유적 발견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그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애써 실천을 했다. 30세까지는 발굴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 염료 사업을 했으며 틈나는 대로 그리스 역사를 공부하고 외국어를 익혀 무려 5개 국어에 통달했다. 심지어 그리스신화에 도움을 얻기 위해 그리스 여자와 결혼하기도 했다. 결국 슐리만은 1873년 터키 히사를리크언덕에서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세계의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한 소년의 호기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호기심은 여러 방면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부러 스캔들을 일으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려는 무명 연예인부터 흥미진진한 추리영화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우주탐사에 이르기까지 호기심은 활발한 작용을 하고 있다. 유명인의 흔적이 있는 곳을 찾는 관광도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임에 분명하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호기심은 인류에게서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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