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윈도우에 담긴 문화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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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분 류 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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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윈도우에 담긴 문화상징
윈도우가 없는 자동차를 상상할 수 있을까? 만약 유리창문이 없다면 앞에 앉은 운전자는 쉼 없이 들어오는 거센 바람이나 이물질과 싸우고,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따라서 느긋하게 기대앉은 채 창밖을 감상하는 건 불가능하리라. 바꿔 말하면 그만큼 자동차 윈도우는 우리가 막연히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경제적․정신적 이득을 주고 있다. 추위․더위에 관계없이 안전한 곳에서 쉴 수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다는 철학적 느낌까지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유리 자체는 고대바빌로니아나 이집트에서 일찍 발명되었지만 유리창이 지금처럼 사람의 의지에 따라 외부와의 단절이나 연결수단이 되는 데에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한 예를 들면, 고대 로마시대에 이탈리아 남부지역에서 유리로 만든 창문이 처음 선보였으나,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내 사라졌다. 더운 날씨에 고정되어 막힌 유리창이 오히려 시원한 바람을 막는 방해물처럼 여겨진 데 그 이유가 있었다. 유리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주택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는데, 흥미롭게도 자동차 역사에서도 비슷한 듯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점이 그러할까? 잘 알려졌다시피 자동차는 어느 한 사람의 독창적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끊임없는 연구에 의해 단계적 발전을 해왔다. 1770년 프랑스의 군사기술자 니콜라스가 포차를 끌고 갈 목적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증기자동차를 비롯해서 1803년 영국의 트레비딕이 만든 최초의 승용차, 1826년 핸목에 의해 실용화된 정기 운행 버스, 지금의 갖가지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그 예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역사에 등장한 초기의 자동차는 대부분 지붕 없는 무개차였다. 당장에 정상적으로 달리는 게 중요한 까닭에 뚜껑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포장마차를 흉내내어 나무나 철조로 승용 칸을 만든 것도 있었지만 답답함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다. 하여 상류층 사람들만 탈 수 있었던 19세기에 만들어진 자동차도 무개차가 주류를 이루었다. 더구나 이 무렵 유럽의 귀부인들은 별 용무가 없으면서도 자동차 타고 교외를 돌아다니는 일이 유행했으므로 몸이 보이는 게 당연했다. 자동차 소유를 알리고픈 과시욕으로 보면 자동차 내부의 보이지 않는 공간은 불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미국의 헨리 포드에 의해 승용차가 대중화되면서 자동차에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년 내내 타고 다니려면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 안의 공간은 단지 비바람을 막는 차단막에 그치지 않았다. 좌석을 편안하게 개선하고 라디오를 비롯한 몇 가지 기능을 설치하자 주거로서의 기능도 지니게 되었다. 더불어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은 채 둘 만의 오붓한 공간으로서 남녀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고, 앉아서 계속 변화되는 세상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극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동차 운행기능이 도로주행에 필요한 정도 이상이 됐고, 운전자들은 속도감과 쾌적함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에 따라 속도감을 강조한 스포츠카가 나왔고, 권위를 강조하는 고급차가 별도로 탄생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제 자동차를 고르는 기준에 실용성과 함께 품격까지 더해졌다. 같은 차라도 크기나 배기량으로 등급이 다르게 매겨졌으며 공간의 의미도 더욱 다양해졌다. 오디오가 설치됨으로써 좁은 공간은 어느새 음악감상실로 변모했고, 윈도우에 썬팅을 해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었다. 특히 특별 주문 생산된 고급차는 뛰어난 승차감은 물론 이색적 장치가 딸린 넓은 공간을 강조함으로써 움직이는 집처럼 여겨졌다. 이건 놀라운 변화였다. 왜냐하면 공적인 도로를 달리면서도 사적인 공간을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윈도우를 열고 닫음으로 외부공간과 통하거나 끊을 수 있는 것은 건물 창문과 다르지 않지만, 개인 소유가 아닌 공용 공간에서 개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소득이다. 정리해 말하자면 개인 입장에서 볼 때 자동차 윈도우는 ‘막힌 가슴에 뚫린 창문’이거니와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락처이기도 하다. 인간은 쉴 때 본능적으로 어딘가에 숨고픈 마음이 있는데 자동차 윈도우는 그런 취향에 더없이 적합한 상징이다. 다만, 그 보호가 외부로부터의 단절이 아닌 서로를 위한 타협일 때 그 상징이 영원히 보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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