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노라, 세상 또한 나를 … 그 역겨운 입김 앞에 아부한 일 없었고, 그 우상 앞에 공손하게 무릎을 꿇은 일도 없노라. 마음에 없는 웃음을 뺨 위에 떠올린 일도 없었고 허황된 메아리를 숭배하여 소리 높여 외쳐 본 일도 없었노라. 속된 무리 속에 끼어 있어도 저들은 나를 친구처럼 대하지 않았노라. 그들 속에 있어도 다만 홀로 서 있었을 뿐. 지금도 아직 수의처럼 남다른 사상을 몸에 지녔다고 하기엔, 이제는 너무나도 마음이 꺾여 더럽혀져 있지만 …
나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노라, 세상 또한 나를 … 결국 나의 적이라면 깨끗이 헤어지리라. 하지만 나는 믿나니, 세상은 나를 배신했어도 진실이 담긴 말과 틀림없는 희망이 있고, 죄악의 함정을 파놓을 줄 모르는 자비로운 미덕이 있다고. 또한 남의 슬픔을 진정으로 같이 울어 주는 자도 있고,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쯤은 그 겉과 속이 같은 이가 있고, 선(善)이란 이름뿐이 아니고, 행복이란 꿈만이 아닌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