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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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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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감성
 
사람들은 대부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이성(理性)’을 지니고 ‘이성(異性)’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더불어 이제껏 감정에 지배당해온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마치 철든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물론 이성(異性)에 대해서는 대개 비슷한 시기에 관심을 느끼고 그 관심은 늙을 때까지 지속되지만, 이성(理性)의 실체를 깨닫는 시기만큼은 사람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다. 왜 그런가?

  ‘이성’은 감정에 빠지지 않고 조리 있게 일을 생각하여 판단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감성’은 자극에 대하여 느낌이 일어나는 능력을 뜻한다. 쉽게 말해 희노애락의 동물적 본능이나 정서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성’때문에 인간이 동물과 구별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이성적인 사람보다 감성적인 사람이 더 많다. 이것은 또 왜 그런가?

  사람의 이성은 가정․사회의 ‘교육환경’과 ‘자신의 노력’에서 비롯된다.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읽고 느끼는 중에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배양되고 내 욕망 못지않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사회성을 무시한 교육이나 애정결핍을 겪은 사람들은 (이성 결핍으로 인해) 여지없이 혼자만의 세상을 추구하게 된다. 이들에게 이성은 ‘관념의 사치’로 비춰질 뿐이고, 감성은 ‘당연한 욕망’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럴까?

  우선 감성을 보자. 감성은 동물적 감성과 인간적 감성으로 구분되는데, 문제는 감성적인 사람이 모두 ‘인간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은 상관없이 자기 욕망과 기분만 추구하는 감성이 전자(前者)에 해당되고, 자신의 기분을 향유하되 타인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감성이 후자(後者)에 해당된다.

  이성에도 등급이 있으니, ‘더러운 이성’과 ‘깨끗한 이성’이 그것이다. 특히 이성 계발을 등한히 하는 사람들의 이성은 거의 ‘더러운 이성’이기에 사회적으로도 위험하다. 자신을 키워준 부모의 은혜를 몰라보고 배은망덕하는가 하면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철저히 계산적이다. 민족의 운명과 관계없이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친일파’와 해외에서 악명 높은 ‘어글리 코리안’들은 대부분 더러운 이성의 소유자들이다. 반면에 ‘깨끗한 이성’은 상대(혹은 사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따뜻한 감성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사회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더러운 이성과 동물적 감성이다. 인터넷만 하더라도 익명성을 이용하여 욕설을 퍼붓고 타인의 자료를 서슴없이 훔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깨끗한 이성과 인간적 감성을 가끔이나마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잡초 속에 핀 한 떨기 예쁜 꽃을 본 것처럼 신선한 쾌감을 주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더러운 이성’은 ‘몰(沒)지식과 무(無)지혜’가 낳은 사생아이다. 좀 더 정감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양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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