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와 에티켓, 그리고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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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신문 잡지 사보 단행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모음
분 류 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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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와 에티켓, 그리고 예의
 
 여러 해 전 일이다. 어떤 모임이 끝난 후 중국인․한국인․일본인이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나이 차이는 중․한․일의 순이었다. 서로 초면인 관계로 예의를 갖춰 술을 마셨는데, 세 사람은 이내 이웃국가임에도 상이한 주도(酒道)를 느끼게 되었다. 이를테면 대작(對酌)문화에 익숙한 한국인과 중국인은 술 따라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으나 자작(自酌)문화에 젖은 일본인은 다소 어색해했다.
 
  건배할 때도 한국인은 당연스레 ‘원샷’을 했고 일본인은 먹고싶은 만큼만 마신 데 비해, 상대방이 마신 만큼 마시는 것을 예절로 여기는 중국인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 지 잠깐 머뭇거리다가 이내 한국인처럼 잔을 비웠다. 술을 따를 때도 중국인과 한국인은 잔을 다 비운 후 채웠으나 일본인은 첨잔을 했다.
 
  가장 극명한 차이는 술을 마시는 모양새에서 나왔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앞을 보고 술을 마시는 반면 한국인은 고개를 돌려 술을 마셨다. 이상하게 생각한 일본인에게, 한국인이 “연장자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게 예의”라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지만 일본인은 그래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문화’란 자연과는 다른 질서를 뜻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말처럼 ‘자연의 질서’가 자연적인 인과법칙에 의해 설명된다면, ‘문화의 질서’는 사회적 배경을 근간으로 인위적인 규범에 의해서만 이해된다. 예를 들어 근대까지도 동양인들은 사회적으로, 혈연적으로, 연령적으로 경어를 써야 할 이에게 반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서양인들을 ‘예절 없는 것들’로 보아왔는데,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동양의 언어 구조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이해가 쉽지 않은 문화는 ‘예의’ 혹은 ‘에티켓’이라는 문제에 당면하면 한층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 유래를 알게 되면 다소나마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개략적으로나마 연원을 더듬어보도록 하겠다. 우선 어원을 살펴보자.

  ‘매너(manner)’는 ‘손과 관련 있는 것’이라는 의미의 후기 라틴어 ‘manuarius'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여기에서 ‘행동하는 방식이나 태도’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셰익스피어도 <햄릿>에서 매너를 ‘관습에 의거한 익숙한 습관’이라고 정의하였다. 반면에 ‘에티켓(etiquette)’은 ‘신사숙녀가 지켜야 할 예의나 예법’을 뜻하는 말인데, 루이 14세 때 베르사유궁전의 정원사가 무단방뇨를 막기 위해 ‘화단에 누구도 들어가지 말 것. 용변은 저곳에서!’이라는 에티켓(푯말)을 세운 데서 유래되었다. 그런가하면 ‘예를 차리는 절차와 몸가짐’이라는 뜻의 ‘예의(禮儀)’라는 말은 기원전 5세기경의 <시경(詩經)>에 처음 보인다. 그러므로 에티켓은 좁은 의미의 매너임을, 예의(예절)에 대응하는 개념은 매너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매너․에티켓․예의는 어떻게 다를까?
  에티켓은 감정을 조절하고 사회적 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처신이라 말할 수 있다. 여자를 먼저 배려하는 ‘레이디 퍼스트’ 따위의 행동이 그에 해당된다. 이러한 에티켓문화는 르네상스이후 시작되었다. 이른바 ‘기사도정신’이 그 발단으로 명예를 중시하는 개성문화가 원인이었다.

  같은 시기 매너문화도 형성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국토) 형성 시기와 맞물린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형식문화가 생겼으며 그에 따라 예절문화가 피어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에라스무스가 1530년 <소년들의 예절론>을 쓴 것이 시초이다. 이 최초의 예절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은 이제 예절이 왜 필요한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코를 풀거나 재채기를 하면 상대의 기분이 불쾌해진다는 당연한 이치를 이때서야 느낀 것이다.

  서양에 비해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예절문화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3세기경 진시황제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이전에 이미 ‘예의’라는 말은 ‘사람의 행동을 규범하며 경의를 나타내는 몸가짐’이란 뜻으로 널리 쓰였다.

  그런데 중국의 예절은 형식을 전제로 남녀간, 부자간, 사제간 따위의 질서를 규제했다. 다시 말해 예절은 상하라는 서열에 초점을 둔 수직적 질서를 마련한 것이다. 예컨대 고대 중국의 상류층 인사들은 자택에서 10일에 한번씩 목욕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이 목욕을 이유로 관료들은 10일마다 하루의 휴가를 얻었다. ‘씻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완(浣)’이라는 글자는 ‘10일’을 뜻하는 것으로도 이해되어, 한 달을 10일씩 나누어 상완(上浣)․중완(中浣)․하완(下浣)으로 표기하는 관습도 생겼다.
 
  당(唐)․송(宋)대에 이르러서는 목욕이 궁정의 중요한 행사로 여겨졌기에 방문객이 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씻었다. 그리고 관료가 황제를 접견하기 전에는 목욕재계를 하는 예절도 생겼다. 이런 관념이 우리 나라에도 전해져서 조선의 선비들은 국왕에게 상소를 올리기 전 목욕재계를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예절이 이처럼 형식에 치중한 수직적 질서라면, 서양의 매너는 상호 동등한 수평적 관념에 바탕을 두고 행해졌다는 점이다. 그 단적인 차이는 경어․반어에서 찾을 수 있다. 동양에서는 고대부터 윗사람에게 공손히 말하는 경어법이 발달했으나 서양에서는 반어법이 보편화되었다. 행사가 있는 날, 한국 어린이가 어린이다운 옷을 입는 데 비해 서양 어린이는 축소된 어른정장을 입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일이다.

  언어의 형식이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반영한다고 볼 때, 반어의 사용은 사람들의 수평적 관계를 뜻하며 그것은 평등사상을 전제로 하고 민주주의정치제도를 용이케 한다. 이와 반대로 경어의 발달은 수직적 관계를 강조하며 계급의식을 강조하고 권위주의정치체제를 가능케 한다. 서양에서 먼저 민주주의제도가 싹튼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 시대를 맞아 세계는 예절문화의 충돌을 겪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원칙을 알면 이런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되리라 생각된다. 바로 상대방의 개성과 감정의 존중이다. 또한 개인이든 국가든 간에 그 개성이나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예절은 ‘번거로운 형식’을 넘어서서 ‘사랑의 전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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