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사연 - 유명인들이 시도하거나 겪은 일 다룬 인물로 본 세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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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나이
24세
24세. 화가 나혜석과 외교관 김우영의 사랑과 연애 1920년 4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은 부모의 모진 반대를 무릅쓰고 외교관인 김우영과 서울 정동예배당에서 김필수 목사 주례로 결혼식을 거행했다. 당시 신부는 25세, 신랑은 35세에 전실 소생이 딸린 변호사라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화제를 낳은 것은 나혜석이 내세운 결혼 조건이었다. 결혼의 내력은 이러했다.
나혜석은 19세 때 일본 도쿄에서 그림 유학을 하다가 최승구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최승구가 폐결핵으로 급사하자 충격으로 인해 나혜석은 일시 발광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신경쇠약이 심해졌다. 부득이 집에 돌아와 휴양을 취했다. 때마침 나혜석의 오빠 친구인 김우영이 집에 들렀다가 서로간에 눈이 마주쳤다.
김우영은 그때 아내를 잃은 지 3년이 되던 해라 매우 고독했다. 며칠 후 서울로 간 김우영은 나혜석에게 기나긴 편지를 보냈다. 상대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나혜석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답하지 않았다.
김우영은 두 번째 편지를 또 보내왔다. 나혜석은 마지못해 간단한 답장을 보냈다. 며칠 후에 김우영은 파인애플과 과일을 사가지고 나혜석을 찾아왔다. 도쿄로 출국한다는 인사를 하면서 김우영은 편지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나혜석은 일본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그렇게 6년 동안 김우영은 몇 번이나 나혜석에게 혼인을 독촉하였다. 그때마다 나혜석은 거절을 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본능적 사랑이라 할진대, 나 외에 다른 여성이라도 무관할 것이요. 하필 나를 요구할 필요가 없을 듯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김우영은 나혜석을 놓지 않았다. 자신에게 필요한 여인은 오직 그대뿐이라는 간절한 호소와 함께 끈질기게 청혼했다. 마침내 나혜석은 그 청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었다. - 일생을 두고 지금과 같이 나를 사랑해 주시오. -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오. - 시어머니와 전처 딸과는 별거케 하여 주시오.
김우영은 무조건 응낙하였다. 나혜석은 또 다른 조건 하나를 더 요구했다. 신혼여행 비용은 자기가 낼 테니 아무 말 하지 말고 말없이 따라와 달라는 것이었다. 김우영은 그 조건도 받아들였다. 그때는 신혼여행이라는 말조차도 못 듣던 때이므로 나혜석 부부의 신혼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화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결혼식을 올린 뒤 나혜석이 찾아간 곳은 외딴 곳에 있는 죽은 애인(최승구)의 묘였다. 김우영은 어이없었으나, 나혜석의 다음과 같은 말에 너그러이 이해해주었다.
“내 첫사랑의 무덤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새 출발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이제까지 애정의 여운을 깨끗이 씻어버리기 위하여 신혼여행비로 이 무덤에 비석이나 하나 세워주었으면 합니다. 영원한 이별의 표시로 말입니다.”
김우영은 화를 내기는커녕 도리어 웃으며 신부를 껴안아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기꺼이 석비(石碑)를 세워주었다. 두 사람은 이후 10년간 더 없이 금실 좋은 사랑을 나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