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퀴즈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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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무학대사(無學大師)는 왕도를 정하기 위해 답사에 나섰다. 무학대사는 '이곳'을 밟고 10리를 걸어간 곳에 한양 도성을 정했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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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난이도 | 글쓴이 | ||||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임금은? | 고대사 | 중급 | 주관식 | |||
신라 신문왕 때 나라의 근심을 해결해줬다는 피리는? | 고대사 | 중급 | 주관식 | |||
다음 중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올바른 것은? *기출 | 근현대사 | 중급 | 객관식 | |||
조선시대에 혼례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 조선사 | 중급 | 주관식 | |||
조선 전기문화에 대한 바른 설명은? *기출 | 조선사 | 중급 | 객관식 | |||
고려말 유교적 가치관을 충실히 따른 충신이 아닌 사람은? | 고려사 | 중급 | 객관식 | |||
신석기시대 생활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기출 | 고대사 | 중급 | 객관식 | |||
다음 중 고려가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은? *기출 | 고려사 | 고급 | 객관식 | |||
김옥균이 일으켜 ‘삼일천하’란 말을 낳은 정변은? | 조선사 | 중급 | 객관식 | |||
1920년대 물산장려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기출 | 근현대사 | 중급 | 객관식 | |||
적극적인 남하 정책을 펼친 고구려 국왕은? | 고대사 | 초급 | 객관식 | |||
조선시대에 80세 노인에게 특별히 준 벼슬은? | 조선사 | 고급 | 객관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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