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에 제작된 짐승얼굴 모양의 와당은 그동안 논란이 분분한 기와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가 명명한 귀면와(鬼面瓦)라는 명칭이 오랫동안 토착어처럼 쓰였고, 2005년 미술사학자 강우방 선생은 용면와(龍面瓦)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치우(蚩尤) 형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저마다 나름의 논거를 제시했지만 모두 미진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 의문이 풀렸다. 녹청자 사자상(綠靑瓷 獅子像)을 통해 귀면와도, 용면와도 아닌 사자 얼굴임을 확인한 것이다.

녹청자 사자상은 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향로이다. 명칭은 녹청자 사자 장식 향로라야 할 것인데, 이 녹청자 사자상은 일명 귀면와로 불린 와당의 비밀을 단번에 명확히 풀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높다.

높이 29.5cm 크기의 사자상을 살펴보자. 연화문(蓮花紋)를 돌린 받침대 위에서 사자가 입을 벌리고 있다. 사자의 포효는 깨달음 얻는 삼매 순간을 표현한 시각적인 상징이다. 입과 콧구멍은 뚫려 있으며, 밑바닥 세 군데에도 구멍이 뚫려있다. 아래에서 향을 피우면 그 연기가 입과 코로 나오게끔 된 구조인 것이다.

사자의 목둘레에는 영락(瓔珞) 목걸이가 장식되어 있다. 영락은 구슬을 꿰어서 만든 목걸이를 이르는 말이고, 신라 때부터 여러 불교 미술에 장식되었다. 또한 사자상은 불교에서 예배 대상의 사방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렇다. 녹청자 사자상은 사찰 법당에 놓여져 불국토를 수호하면서 입으로 좋은 향기를 내뿜은 서수상(瑞獸像)인 것이다.

이제 그 얼굴을 보자. 부리부리한 눈과 위로 들린 코, 그리고 턱 주위를 감싼 갈기는 의심할 여지없이 통칭 귀면와와 일치한다. 와당 갈기 끝에 말린 구슬은 영락의 구슬을 살짝 변형한 것이고, 입에서 나온 영기는 향로 연기 즉 향기(香氣)임에 틀림없다.
 

이로써 다른 시대에 없는 독특한 양식인 사자 조각이 신라 후기에 유난히 많이 제작된 이유도 알 수 있게 됐다. 불국사 다보탑과 분황사 석탑에는 사자상이 장식되어 있으며, 함안주리사지사자석탑 기단부에도 네 마리 사자가 배치되어 있다.

신라인은 사찰을 지을 때 지붕에는 사자 얼굴 모양의 와당을 장식하고, 땅에는 사자 장식 석탑을 세우면서 평화와 안전을 기원했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신라는 불국토를 꿈꾸었던 나라이며, 다보탑과 성덕대왕신종으로 대표되는 불교 유물은 뛰어난 예술미까지 겸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녹청자 사자상 역시 감탄 나올 정도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선조들의 조형미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글. 박영수(테마역사문화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