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5에 담긴 의미와 상징
1905년 11월 18일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백성들은 그에 앞장섰던 매국 관리 다섯 명을 묶어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 부르며 규탄했다. 1970년 시인 김지하는 담시(譚詩)를 통해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을 묶어 ‘오적(五賊)’이라고 비판했다. 나쁜 대상을 손꼽을 때 왜 대표적으로 다섯을 추릴까?
그 이유는 숫자 5가 한손으로 헤아리기에 적당하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무엇을 손꼽을 때 양손이 아니라 한손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양손보다 한손으로 헤아리는 게 강력한 의지를 느끼게 하는 까닭이다. 이때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왼손잡이는 오른손으로 수를 헤아리면서 반대편 손은 (응징의 표현으로) 주먹을 쥐곤 한다.
여기에 숫자 5가 조선시대에 불길한 수로 여겨졌다는 정서가 반영되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5일․15일․25일에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피하고 조심스레 행동하였다. 도둑이나 죄인을 묶는 오랏줄을 붉은 명주실 다섯 가닥으로 꼬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5는 처단해야 할 대상자나 불길한 수를 의미했기에 나쁜 대상자를 대표적으로 꼽을 때 종종 이용된 것이다.
그렇지만 5는 불길함만 상징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완벽한 조화로서의 상징성이 더 크다. 고대 중국인은 5를 가장 신비로운 숫자로 여기면서 온갖 사물과 이치를 5로 분석하고 풀이했다. 이 경우 5는 네 방향과 가운데 중심을 합한 수로서 보편성을 상징한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은 이런 관념을 잘 반영하고 있으니, ‘오행’이란 세상 만물의 기본이 되는 다섯 가지 물질(물․불․나무․금속․흙)의 순환원리를 말한다. 양(陽 빛)에 해당하는 목(木 나무)․화(火 불)와 음(陰 그늘)에 해당하는 금(金 쇠)․수(水 물) 그리고 그 중간인 토(土 흙)가 조화를 이루면 융성하고 부조화하면 기운이 쇠퇴한다는 것이다.
음양오행설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여러 분야에서 대표적인 5가지로 손꼽거나 묶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오곡(五穀), 오미(五味), 오대명산(五代名山), 오언절구(五言絶句) 등등 그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는 5를 마법의 수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 피타고라스학파의 펜타그램(Pentagram)에 있다. Pentagram은 ‘다섯’을 뜻하는 라틴어 penta에 ‘도형’을 의미하는 gram을 합쳐 만든 단어로서, 필기도구를 종이에서 떼지 않고 한 번에 그릴 수 있는 오각형 별을 가리킨다. 피타고라스학파는 펜타그램을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기호로 썼으며, 이에 연유하여 서양에서 펜타그램은 부적 같은 기호로 여겨졌다.
펜타그램을 마술적 신념의 상징 기호로 여기는 정서는 지금도 유효해서, 1943년 건립된 미국 국방부 본부 펜타곤(Pentagon)은 펜타그램 효과를 기대한 오각형 건물로 유명하다. 또 <독수리 오형제>․<캡틴 플래닛>․<후뢰시맨>처럼 지구를 지키는 내용의 만화영화 주인공은 대부분 다섯 용사로 구성되는데 이때의 5는 머리․양팔․양다리로 상징되는 인체의 완전한 결합과 무적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숫자 5는 완전무결함을 상징하는 기호로 통한다. 386, 486 다음 단계 586컴퓨터를 펜티엄(pentium)이라 이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완벽한 컴퓨터 시스템임을 강조하고자 586이라 명명한 것이다.
카메라 브랜드 펜탁스(Pentax) 역시 5의 상징성을 강조한 명칭이다. 일본 아사히 광학은 SLR카메라 핵심 부품 펜타프리즘(Pentaprism)과 리플렉스(reflex)를 조합한 카메라를 처음 선보이면서 Pentax라는 브랜드를 통해 오각형 프리즘과 완벽함 사진기임을 동시에 알렸다.
한편 숫자 5의 대표적 브랜드로는 ‘샤넬 No.5’가 있는데, 사실 그 의미는 수의 상징성과 관련 없다. 샤넬이 1921년 향수를 잇달아 발매하면서 다섯 번째로 개발된 제품에 ‘No.5’라고 명명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향수 브랜드는 시적(詩的) 이름이 대부분이었던 까닭에 단순한 ‘No.5’가 오히려 비범한 브랜드로 주목받았고, 여기에 시나브로 5의 상징성이 더해지면서 세계적 브랜드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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