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 태조 이성계부터 순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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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도서

테마역사문화연구원 박영수 원장이 집필 저술한 교양도서 소개
전국 주요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출판사 풀과바람
ㆍ추천: 10  ㆍ조회: 2170  
<조선시대 왕> 태조 이성계부터 순종까지
 

 
- 국왕으로 보는 색다른 조선 역사 여행
  왕이 된 과정과 핵심 사건은 물론 앞뒤 맥락,
  왕실에 관한 정보도 함께 담아 각각의 국왕에 대해서 통합적으로 설명.

- 조선 왕이 들려주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
  흥미로운 일화를 통해 국왕의 인간적 면모와 개성 그리고 능력을 고찰.

차례
 
태조 이성계, 혁명적 지도자
정종, 격구 즐긴 튼튼 국왕
태종, 두 얼굴의 군주
세종, 솔선수범 지도자
문종, 뛰어난 두뇌의 임금
단종, 비운의 소년 국왕
세조, 술을 즐긴 호탕한 군주
예종, 불운의 왕
성종, 서민과 같은 군주
연산군, 폭군 중의 폭군
중종, 신하들에 휘둘린 국왕
인종, 효도쟁이 왕
명종, 기를 펴지 못한 군주
선조, 열등감 임금
광해군, 절묘한 외교가 임금
인조, 굴욕의 왕
효종, 북벌 추진 담대한 대왕
현종, 미식가 군주
숙종, 자기반성 통치자
경종, 신경 쇠약 앓던 국왕
영조, 장수 국왕
정조, 총명 임금
순조, 세도 정치에 시달린 임금
헌종, 사랑꾼 군주
철종, 강화도령
고종, 개혁 임금
순종, 마지막 황제
조선 왕조 계보


 
책 속으로
 
효종(孝宗, 1619~1659)은 지모(슬기로운 꾀)가 비상해서 판서나 감사가 흑백을 가리지 못하는 난처한 송사도 귀신같이 판가름하곤 했습니다.

어느 해 나무꾼이 산속 절벽 위에서 사람 넷이 죽어 시체로 있는 걸 발견하여 관가에 신고해 왔습니다. 사건 현장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목을 매어 죽었고, 다른 세 사람은 여기저기 쓰러져 죽어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보따리 네 개와 빈 술병 한 개가 놓여 있었으며, 세 보따리에는 돈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관원이 나가 현지를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어찌 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

마침내 왕에게 그 사건을 보고하자, 효종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네 놈은 모두 한패의 도둑놈이다.” (……)
“그놈들은 산속으로 가자 술 생각이 나서 한 놈에게 술을 사 오라고 시켰을 것이다. 술병이 그걸 증명한다. 술을 사러 간 놈은 저 혼자 그 돈을 가지려고 술에 독을 타서 가지고 왔을 것이다.”

효종은 잠시 뜸을 들인 다음 이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세 놈은 세 놈대로 술 사러 간 놈을 죽이고 몫을 늘리자고 작당했을 것이다. 하여 세 놈은 술병 들고 온 놈이 오자 달려들어 목을 매어 죽였을 것이다. 그 뒤에 세 놈은 독이 든 줄도 모르고 술을 마셨다가 제 놈들도 죽은 것이 분명하다.”

이로써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으니, 효종의 놀라운 분석력에 신하들은 연신 감탄했습니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 8년 동안 볼모로 살았습니다. 형 소현 세자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대를 이어 세자로 책봉되었고, 1649년 제17대 임금으로 등극했습니다.

효종은 약소국의 비극을 몸소 겪었기에 그것을 복수하고자 군비를 확정하면서 북벌(北伐)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완을 훈련대장에 임명하여 군대를 강하게 훈련시켰고 한양 외곽의 성지(城池)를 수보하고 군량을 저장하여 강화도 일대의 수비를 강화했습니다. 또한 표류해 온 네덜란드인 하멜 등을 훈련도감에 예속시켜 이완의 지휘 아래 조총·화포 등의 신무기를 개량하게 했습니다.

효종은 수시로 강화도를 방문하여 진행 상황을 점검했는데 그때마다 강화도 군마목장에 있는 흰 바탕에 푸른 점을 가진 말이 용케도 왕의 행차를 알고 강을 건너 왕을 태워 모시고 오고 돌아가실 때 모시곤 했습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효종은 이 명마에게 벌대총(伐大?, 대륙을 정벌할 푸른 말)이란 이름을 지어 주면서 특히 아꼈습니다.

그런데 벌대총이 어느 날 왕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쓰러지더니 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효종은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하며 크게 슬퍼했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효종은 재위 10년 만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얼굴에 생긴 작은 종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이튿날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병이 악화하고, 독기를 빼고자 침을 맞았다가 며칠 뒤 40세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조선 시대 북진 정책도 허망한 꿈이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