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섬세한 문학가와 활달한 음악인의 사랑, 윤심덕과 김우진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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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섬세한 문학가와 활달한 음악인의 사랑, 윤심덕과 김우진 연애

1926년 7월 16일, 경성역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양장 입은 한 여인을 배웅하고 있었다. 레코드 취입차 일본 오사카로 떠나는 윤심덕을 격려해주기 위해 나온 것인데, 당시 연극계의 원로이자 레코드 취입 주선자인 이기세가 말했다.
“취입 잘 해야 돼. 마이크 무서워하지 말고, 평소실력을 발휘하란 말이야. 그리고 올 때는 고급넥타이나 하나 사 가지고 와.”
“넥타이요? 죽어도 사와요? 호호호!”
윤심덕은 장난기어린 대답을 마치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며칠 전, 목포에서는 김우진이 그의 어린 아들을 안은 채 유난히 서럽게 울었다. 그 까닭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착한 아내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고, 이제 시간이 다 되었는지 김우진이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 말 잘 듣고 지내거라. 그럼 아빠는 간다.”

윤심덕이 누구인가? 한국 최초의 관비 유학생 아닌가. 일본 도쿄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돌아와 타고난 고운 음성으로 이땅에 순수음악을 알리기 위해서 계속 무대에 선 음악인이다.

1920년대 중요한 연주활동을 살펴보면 어느 음악회이건 윤심덕의 이름이 올라 있고, 1923년 7월7일 YMCA에서 열린 제1회 독창회는 그야말로 초만원을 이룰 정도로 그녀는 당시 독보적인 성악인이었다.

그러나 가난이 문제였다. 무대예술인을 광대처럼 여기는 풍토에서 성악만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기란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서울의 갑부 아들 이용문이 후원해주겠다며 접근하는 바람에 오히려 돈 때문에 몸을 판다는 요상한 스캔들만 일어나고 급기야 윤심덕은 정처없는 만주 유랑길을 떠나고 말았다.

1년여를 그렇게 방황하다 서울로 돌아왔으나 생활고로 인해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차에 닛토 레코드회사측의 부탁을 받은 이기세와 이서구가 윤심덕을 찾아와 음반 취입을 권유했다. 윤심덕은 처음에는 “예술가로서 유행가를 취입할 수는 없다”고 거절했지만 거듭된 요청에 승낙하고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김우진은 누구인가? 목포에 있는 갑부의 아들로 태어나 유난히 문학에 심취하여 일본 와세다대학의 영문과에서 공부한 문학인이다. 그는 전공학과보다는 시와 희곡분야에 더 열중했는데, 그가 번역하거나 집필한 희곡 <찬란한 문>․<난파>․<산돼지>․<이영녀>등은 한국문예사에서 표현주의 희곡들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윤심덕과 김우진이 처음 만난 것은 1921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일본유학생들이 결성한 극예술협회 <동우회 순회극단>에서였다. <동우회 순회극단>은 여름방학이 되면 귀국하여 극단 활동을 통해 애국애족의 계몽을 전개했는데, 두 사람은 이 모임에서 자연스레 친해졌다.

나라 잃은 상황에서 공통적인 애국심을 지닌 젊은이들이 예술에서마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호감 혹은 교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상황은 빠르게 전개돼 활달한 성격의 윤심덕과 섬세한 성격의 김우진은 심정적으로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며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예술가에게 있어 서로에 대한 이해심은 사랑으로의 통로였던 까닭이다.

홍난파도 윤심덕을 좋아했으나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깊은 우정으로 만족해했다.
하지만 이 사랑은 시작부터 불행을 예고하고 있었다. 김우진에게는 이미 처자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우진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많은 밤을 술로 보내곤 했다. 윤심덕 역시 복잡한 심정을 갖고 있었으며 무슨 이유에서인지 새빨간 입술 화장을 하고 다녔다. 선배 배우 석금성은 1925년 초가을의 일이라며 이렇게 회고한 바 있다.

“어떤 잠재심리의 표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윤심덕은 별나게 붉고 진하게 입술을 칠했으며, 여러 번 충고했으나 들어먹은 적이 없었다.”

어찌 됐든 윤심덕과 김우진은 일본 오사카에서 만났다. 윤심덕은 예정된 레코드 취입을 마치면서 예정에 없이 한 곡을 더 부르겠다고 했다. <다뉴브강의 푸른 물결>에 맞춰 자신이 작사한 <사의 찬미>였다. 동생 윤성덕이 피아노 반주를 했으며, 이 노래는 우리 가요사상 최초의 히트곡으로 기록된다.

그런데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으니……. 윤심덕과 김우진이 현해탄을 건너오는 도중에 실종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바다에 동반 자살했다고 알려졌으나 투신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없다. 유럽으로 잠적했다는 설도 있으나, 모든 것은 뜨거운 사랑에게 물어볼 미스터리일 뿐이다.
한편, 이기세에게 약속한 넥타이는 우편으로 배달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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