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만 청혼하다 번번이 채인 안데르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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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일생
시(詩)로만 청혼하다 번번이 채인 안데르센

 안데르센(1805~1875)은 오늘날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인 동화작가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애초에 동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열다섯의 나이에 인생 최고의 목표인 배우가 되고자
도시로 나왔지만 빛을 보지 못했고,
차선책으로 명예로운 작가가 되고자
시(詩) 희곡 소설 등을 썼으나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던 동화를 썼다.
이때 안데르센은 전해오는 설화에 어머니 또는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슬픈 정서를 잘 스며들게 이야기를 구성했고
이것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뜻밖이었지만 어찌됐든 이로 인해 안데르센은 유명인사가 됐으며
세상의 아이들에게 소중한 선물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성공한 자의 삶은 주목받는 법이다. 안데르센은 자서전을 3권이나 저술했는데
그 하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서두가 시작된다.
“나의 인생은 유복하고 행복에 찬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였다.”

그러나 실제 안데르센의 70년 생애는 자기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지도 못했고 평탄하지도 않았다.
사랑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안데르센의 생애를 통해서 남다른 여성이 세 명 있었다. 그런데 그 세 사람 중에서 그에게 연정을 품은 여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안데르센의 못생긴 외모 탓도 있지만, 상대 성격에 관계없이 낭만적인 편지로만 상대를 공략하려한 안데르센의 전략 부재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

최초의 여성은 리보아 보익트였다. 리보아는 학교 때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한 살 위인 안데르센은 리보아를 처음 본 날 아름다운 얼굴과 명랑한 태도에 홀딱 반했다. 행여 누구에게 리보아를 빼앗길까 싶어 급한 마음에 “당신만을 생각합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詩) 한 수를 보냈다.

안데르센은 무척이나 애가 닳도록 그녀를 사모하고 있었고, 리보아 역시 소꿉동무인 약혼자가 있으면서도 안데르센에게 상당한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안데르센이 요즘말로 조금만 더 작업하면 넘어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안데르센에게 있었다. 그런 리보아에게 좀더 강력하고 명백한 태도를 취했더라면 두 사람의 운명을 돌려놓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더 이상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면서 시간만 보냈다. 은연중 리보아로부터 어떤 신호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지만 약혼자 있는 여인이 드러내놓고 다른 남자에게 접근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결국 안데르센은 아쉬움을 가진 채 리보아의 결혼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다음 여성은 후원자인 요나스 콜린의 딸, 루이즈 콜린이었다. 안데르센은 처음엔 리보아에게서 받은 실연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루이즈를 만났다. 다른 여자에게서라도 동정을 받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디 사랑이 사람 마음대로 조절되는 일이던가.

안데르센은 루이즈를 몇 차례 만나면서 해맑은 눈동자와 흰 살갗, 윤기가 흐르는 갈색 머리에 차츰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내 안데르센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본래 계획에 없는 일이었으나 한 번 붙은 사랑의 불길은 겉잡을 수 없이 타올라서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됐다.

하여 안데르센은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시 한 수를 보냄으로써 애정을 표현하였다. 일종의 청혼이었다. 다만 이미 한 번의 실패가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적극적인 공세를 폈으며, 수시로 시 한 수가 담긴 편지를 보내어 연정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방 쪽에서 무관심했다. 루이즈는 애당초 안데르센에게 남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에 아무 관심이 없었으며, 낭만적인 시에 시큰둥했다. 루이즈는 편지를 여러 통 받았지만 답장은 단 한 번만 보냈다. 그나마 그 내용도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말라는 거부신호였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결혼한 언니가 모두 읽기로 했습니다.”

이와 같은 편지를 받아든 안데르센은 비참한 심정이 되었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일방적 짝사랑인데다 당시에는 형제자매가 연애편지를 대신 읽는 게 거부의 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흠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 후 루이즈는 젊은 변호사와 약혼하면서 안데르센에게서 확실히 멀어져갔다.

세 번째 여인 예니 랜드는 안데르센이 38살 때인 1843년 만났다. 코펜하겐에서의 공연에 처음 모습을 나타낸 이 스웨덴 무희는 갈색 머리와 회색 눈을 지닌 키 큰 미인이었다.

안데르센은 예전의 경험을 거울삼아 더 다양한 노력을 했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담았다고 생각한 시(詩)와 함께 여성의 환심을 살만한 선물들을 아낌없이 주었다. 예의 낭만적인 시를 통한 구혼전략을 또 구사한 것이다.

그러나 예니는 안데르센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문학가로서는 유명할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어딘지 우울한 인상의 안데르센에게 이성으로서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니는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친구처럼 지내는 우정을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데르센은 예니를 향한 사랑의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1845년, 안데르센은 예니와 함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기 위해 예니가 공연중인 베를린으로 여행했다. 하지만 예니는 안데르센을 초대하지 않았고 안데르센은 그날 밤 호텔방에서 혼자 쓸쓸히 눈물을 삼키면서 지내야 했다. 1852년 예니가 결혼했을 때 안데르센은 절망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이후 안데르센은 독신을 결심했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인생을 즐겼다. 또한 안데르센은 처절한 비련의 아픔을 바탕으로 비극적 결말로 유명한 <인어공주>와 <성냥팔이 소녀>를 집필했고, <미운 오리새끼>를 씀으로써 못생긴 외모 콤플렉스를 달랬다. 비록 사랑에는 실패했을지언정 슬픈 사랑을 통해 위대한 문학적 능력을 발휘한 셈이다.

20세기의 사상가 에리히 프롬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는데, 마치 안데르센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듯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생산적인 능동성이다. 그것은 사람·나무·그림·사상 등에 대한 돌봄, 앎, 반응, 긍정, 즐거움 등을 뜻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력을 증대시키고 소생시키는 것을 뜻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재생시키고 증대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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